전자바이올린계의 여신 ‘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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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바이올린계의 여신 ‘박은주’
  • 윤용태 기자
  • 승인 2013.12.0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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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바이올리니스트 박은주, 자랑스러운 한류 바이올리니스트·대한민국 바이올리니스트·····4일 부여군으로부터 홍보대사 1호 위촉패 수여

필리핀 마닐라시장, ‘당신은 마닐라의 딸이다’라고 극찬 훈장 수여·····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바이러스’, ‘바이올리니스트 주희’ 역 출연

우리에게 다소 낯선 ‘전자바이올린’이란 것이 있다.

전자바이올린은 클래식 바이올린과 달리 현의 울림을 진동(전기) 신호로 바꿔 앰프와 스피커를 통해 연주하는 악기로서 클래식 연주법을 통해 다양한 악기의 음과 톤을 만들어 연주의 색을 만들고 또 다른 감성을 만드는 악기다.  이 전자바이올린에 대한 국내외 최정상의 명성(전자바이올린계의 여신)을 이어가는 박은주 전자바이올리니스트가 부여군 홍보대사로 오기까지 삶과 활동을 조명해 보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미래상에 대해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홍보대사 위촉 기념촬영(좌 이용우 군수, 우 박은주 전자바이올리니스트 )

박은주는 부천에서 태어나 음악성이 풍부한 부친의 영향을 받아 5세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며 클래식의 길 평탄하게 걸어왔다.

거의 모든 사람이 현재의 ‘성공’이란 단어 앞에 고난과 역경, 그리고 노력이 없고서는 있을 수 없는 법. 그녀도 지금에 있기까지 하늘과 땅, 해와 달은 보았지만, 사람은 잘 보지 못한 가시밭길을 걸어온 과거가 있다.

한창 배움의 절정인 중요한 입시 앞 둔 고 3때 집안의 어려움으로 인해 레슨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돼 유명 연주자의 CD를 구매해 똑같이 따라하는 독학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이런 상황은 여동생이 바이올린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당시 레슨 받던 사람들을 비춰보면 1/5정도밖에 되지 않는 열악한 배움의 상태에서 어렵게 대학(경원대)에 입학했다.

대학생활도 그리 평탄치 않았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집에 손 벌릴 수 없다 보니 학비를 자체 해결하려고 결석은 밥 먹듯이 했다. 해가 보는 앞에서, 달이 보는 앞에서, 별이 보는 앞에서, 동서남북에서, 학비마련을 위해 공연이란 공연은 다 다녔다고 회고한다.

이런 ‘억척’이 휴학 한번 하지 않고 대학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낸 밑거름이 됐다.

인생진로의 가장 중요한 대학 4학년, 고민 중 선택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 와중에 인생항로의 길이 나타난 것.

대학교 4학년 나훈아(대중가수) 팝오케스트라 악단에서 솔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한 게 인생의 키가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나훈아는 그녀에게 “네가 솔로 연주할 때는 자신보다 더 주인공 같이 해야 하고 끝난 뒤 너의 간주가 나올 때는 박수가 나온다면 안 되는 거야! 내 노래 다음에 나오는 중간박수를 선율로 막을 정도가 돼야 사람들로부터 너의 악기소리의 흡인력을 인정받는 거다. 선율이 아름다우면 사람들이 그 아름다운 바이올린소리를 듣고자 박수를 못 친단다”라고 말해, 그때부터 더욱 더 한음, 한음을 느끼고 감정을 전달하며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가슴속 깊이 움츠리고 있던 심장에 용솟음치는 열정을 쏟아 부어 그 심장이 뜨거워 졌다고 한다.

     
 

 

 

 

 

 

 

 

 

 

 

 

또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가슴 벅차게 차오르면서 사람들에게 진실한 음악을 들려줘야 영원한 노래쟁이, 소리쟁이, 연주쟁이 등 진정한 뮤지션의 길을 추구하고 무대에서 그들과 공감하고 행복하게 음악을 나누는 그런 뮤지션이 되겠다고 항상 강열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박은주는 MBC 관현악단 입단해 3년 정도 활동하게 된다. 악단 생활 중 특별한 습관이 생겨났다. 전날, 당일, 공연 직전에도 짧은 시간 안에 악보를 빨리 암기하는 것이 버릇이 되다 못해 어느새 습관으로 바뀌어 현재는 악보 없이 1000여곡을 연주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른 달인이 된 것. 이렇듯 악단 활동은 만족스러웠지만, 나훈아의 말은 그녀에게 항상 숙제였다.

첫 앨범(패션)을 준비하던 중 800만원(박은주에겐 천금)을 사기 당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첫 앨범은 세상과 입맞춤을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하고 했던가.

첫 앨범을 발표한 그녀에게 또 하나의 우연이자 기회가 찾아왔다.

우연히 음악 드라마의 오디션 공고를 신문에서 보고 공연 스케줄 중 잠시 짬을 내 오디션에 참여했다. 결과는 합격. 2008년 인기리에 방영됐던 MBC 수목드라마 ‘베토벤바이러스’에 ‘바이올리니스트 주희’ 역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스크린을 통해 시청자들과 첫 상견례를 가지는 기쁨을 누렸다.

그녀는 당시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은 고되지만 재밌어요. 배우는 점도 많이 있고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촬영 때문에 거리 공연을 많이 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공연장이나 길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는데 말이에요”라고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평생을 함께 해 온 본업인 음악으로 돌아와 코엑스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성공리에 마치면서 본격적인 전자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새 장에 힘찬 발걸음을 옮겨 놓는다.

이러한 국내의 왕성한 활동은 국외에서 이름값을 더욱 높이며 빛을 낸다.

     
 

 

 

 

 

 

 

 

 

 

 

 

그녀는 베토벤바이러스 드라마 종영 후 한국 연예인에 배속돼 베트남 선교 취지로 갔다. 그 곳에서의 일화가 전해진다.

한-베 수교 17주년 기념 코리안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됐는데 2분의 짧은 공연이었지만 폭발적 반응에 힘입어 베트남에 진출하게 됐다. 베트남 교민잡지를 운영하는 조병수 대표는 베트남에서는 이런 장르가 생소하지만, 열정적이고 매력있어 좋다며 베트남 가수들과 함께 수입금 전액을 베트남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자선 콘서트를 주관했다. 콘서트 공연을 본 베트남 아파트 건설업체 블루밍타워다낭 신용규 대표는 그녀에게 베트남 블루밍아파트 CF모델을 해 줄 것을 제안했다.

제안을 받아들여 연주자 겸 모델로 활동 중 베트남 최고 인민위원회에서 한-베 자선콘서트공연감사패를 받은 인연으로 2년 정도 장기 공연을 하다 필리핀으로 진출하게 됐다.

그녀가 출연했던 MBC ‘베토벤 바이러스’가 필리핀으로 수출되면서 본격적인 진출의 불씨가 됐다.

전자바이올린이 낯선 필리핀에서 불꽃축제에 구경 온 현지인 4~5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무대 뒷편에 태극기가 펼쳐지고 태극마크가 달려있는 옷을 입고 공연하면서 대중의 눈빛과 박수갈채에 매료되었던 것이 뿌듯하고 감동으로 남아있다. 특히 공연이 끝난 직후 애국가가 밤하늘에 울려 퍼질 때, 외국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자긍심을 강하게 느꼈고, 한류 바이올리니스트로 자랑스러움을 감출 수 없던 것을 기억하며 미소 짓는다. 특히 그녀의 공연에 눈과 귀, 더불어 마음을 도둑질 당한 마닐라시에서는 시장 이름으로 훈장까지 수여하면서 ‘당신은 마닐라의 딸이다’라고 시장이 극찬했다. 이는 그녀가 더욱 힘찬 활동에 정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셈이다.

이후 공연에 소외된 병원, 보육시설, 교도소 등 어려운 이웃을 보며 작은 무대지만 큰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감동을 전하고 있고 현재도 기회만 되면 언제 어느 곳에서든 공연준비는 완료다.

이러한 소박하고 감동적인 공연활동이 필리핀 국민에게 사랑받는 요인으로 작용해 ‘박은주’라는 이름으로 학교까지 설립되는 영예를 얻었다.

이 같은 필리핀에서의 활동은 그녀가 왜 거기에 있어야만 했는지에 존재가치를 부여한다.

한편 2011년 SBS TV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한 그녀는 “마닐라의 딸이기 전에 한국의 딸이니까 한국인의 사랑의 힘을 많이 받으면 힘을 내서 열심히 활동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면서 수줍음과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현재도 1년에 2~3달 머무는 주 무대인 필리핀을 비롯해 베트남, 중국, 일본 등 해외에서 한류 바이올리니스트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바쁜 일정 속에서의 추억에 대한 에피소드도 전한다.

한번은 바이올린은 클래식바이올린과 전자바이올린 두 가지를 가지고 다니는데 케이스를 바꾸어 가지가는 바람에 악기도 바뀌어 공연에 어려움을 격은 적도 있고, 많은 움직임 속에 옷매무새도 제대로 하지 못한 적도 있고, 공연 중 구두끈이 끊어져 중간에 맨발로 30분을 공연한 웃지 못 할 황당한 일도 겪었다.

또 필리핀에서 있었던 일로 전자바이올린은 리버브와 딜레이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전자악기로서 연주홀과 음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기기적 특성으로 인해 컴퓨터로 이펙트를 연구해서 틀었는데 전력이 모자라 중간에 음악이 안 나온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당시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지만, 현재는 추억에 달콤함을 첨가한 빡빡한 일정, 그리고 고단함과 긴장감을 풀어주는 망중한의 스트레스 해소용이 됐다.

박은주는 어두운 거리를 밝게 비추는 등불이기도 하다.

       
 

 

 

 

 

 

2009년 코피노 홍보대사로 위촉돼 보육시설, 병원, 교도소 등 다양한 장소에서 코피노 자선 모음 음악회를 열어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고, 2010년 제6회 ‘이홍렬의 락락페스티벌’에 재능을 기부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부터 패를 수여받았으며, 동년 제17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이 상을 수상한 그녀는 “소외된 곳에 더욱 더 자선음악회 등 많이 하라고 준 상이라고 봐요”라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2011년엔 이주민을 위해 설립된 (사)경기글로벌센터 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고, 2012년에 들어서 사랑의 네트워크 장학재단 홍보대사로 청소년 아이들의 꿈을 심어주는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이와 별도인 주요 활동 사항으로는 2008년 1집 ‘passion(패션)’, 2009년 2집 ‘capriccioso (카프리치오소)’, 2010년 ‘뉴에이지 (New Age) endless heart’, 2011년 싱글 ‘나그대만을 사랑합니다’등 음반을 발매했다.

또 OST는 MBC 미니시리즈 베토벤바이러스 OST, KBS 미니시리즈 꽃보다남자 OST, KBS 드라마 장화홍련 OST, 영화 화려한 휴가 OST, 므이 OST 등을 연주하면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연주만 하다 보니 한계를 느껴 좀 더 폭넓은 음악세계를 접하고자 이태리 로마 A.I.D.M아카데미아 디플로마 과정을 수료하고 이화여자대학원 공연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MBC 관현악단과 경기도 문화의 전당(경기도립 팝스 앙상블) 단원을 역임하고 백석대 음악대학원에서 강사로도 활동한 이력이 있으며 현재는 M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틀면서 본격적인 전자바이올리니스트로서 활동해 온 그녀는 전자바이올린을 나의 전부, 나의 꿈, 나의 남자친구로 표현하며 전자바이올린이 불가분리의 인생 전부로 도장 찍는다.

또 전자바이올리니스트는 대중들과 소통하는 연주자이고 행복, 꿈, 희망,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은 해피바이러스 연주자이며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즐겁고, 신나고 때론 가슴을 적시는 바이올린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연주자라고 말하는 그녀는 진정한 뮤지션이다.

그녀의 동영상을 보면 마치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 수줍어하고, 농도 치고, 발랄하기도 하고, 차분하기도 하다. 하지만 전자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대반전이 된다. 1000여곡을 소화할 수 있는 연주력은 트로트, 클래식, 발라드, 외국가요, 우리가요 등 장르에 경계가 없고 음악의 국적 없이 소화할 수 있는 파괴자다. 또한 그녀의 연주는 강한 비트와 때론 가냘프기도, 때론 짜릿하기도 한 선율이 뿜어져 나오면서 율동의 몸짓으로 이어지는 퍼포먼스는 관중의 눈, 귀, 마음을 모두 빼앗아 무아 상태를 만든다. 관중은 단지 그녀의 연주를 따라올 뿐이다.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강한 정신력을 뒷받침하는 철학과 가치관이 없다면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것과 같이 그녀에게도 정신적 강한 뚝심이 흐른다.

       
 

 

 

 

 

 

 

 

 

그래서 사계(四計)란 것을 외친다. 사계는 사람의 네가지 계획을 말하며, 이를 풀이하면 하루의 계획은 힘찬 시작의 아침에 있고, 한 해의 계획은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있고, 한 평생의 계획은 부지런히 노력함에 있고, 한 집안의 계획은 행복을 만드는 화목에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계획에 맞게 열심히 노력하며 살다보면 하루, 일년, 인생 그리고 가장 소중한 가족의 행복이 달라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 어떤 꿈과 목표가 중요하고 그 꿈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믿는 ‘자아’, 그리고 노력하면 언젠가 꼭 이루어질 수는 있다는 믿음감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은 노력에서 비롯된 결과란 말이다.

또 그녀는 “된다는 사람만 되고, 안 된다는 불안함을 가진 자는 안 돼요”라고 말한다. 처음에 있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일단 부딪쳐 봐야 하고 최고에 대한 포기가 있을망정, 최선에 대한 후회는 없어야 한다는 도전 정신이 깃들어 있다.

이 같은 것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바이올린에 LED를 접목해 시도한 것도 처음이고, 장르별로 신나게 편곡해서 대중들에게 다가간 것도 처음이고, 지난 16일 대전 충남대학교에서 제2회 대전 드라마 페스티벌 ‘2013 에이판 스타어워즈(2013 APAN STAR AWARDS)’ 시상식에 2010년 제1회에 이어 2회에도 참석했는데 제1회 때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레드카펫을 밟은 건 그녀가 처음이다.

이에 대해 그녀는 “모든 것을 처음하고 있다는 그런 부분 때문에 인생이 흥미롭고 더 열심히 도전하고 싶은 것 같아요. 경험하고 매번 도전한다는 것이 어렵고 부담스럽지만, 현재는 부담을 잠시 내려놓고 오히려 즐기고 있어요”라고 즐기는 도전정신을 말했다.

그녀는 ▲사랑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익숙한 인간적인 사람이 되자 ▲늘 사랑하며 살자 ▲건강과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살자 ▲이세상은 너무 아름답고 즐거운 곳 ▲즐겁고 유쾌하게 살자 심각함은 던져버리고 인생을 즐기자 ▲늘 새롭게 결단하고 하루하루 발전하는 사람이 되자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존재인 나 자신을 굳게 믿고 도전하자 ▲감사하는 삶을 살자 ▲사랑하는 가족 친구 직장 동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자 등 8대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의 아름다운 삶을 가지고 그 삶을 노래하며 인생의 꿈에 나래를 펴고 있다.

하지 않으면 하고 싶은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했다면 하고 싶은 것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바이올리니스트가 하려는 숨은 그림은 뭘까.

그녀가 말하는 첫째는 대학원에서 영화음악을 연구하고 음악공학석사를 받았는데 공부하면서 오케스트레이션에 푹 빠져있어 뮤지컬이나 영화음악공부를 계속하고 싶고, 둘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곡들을 알기 쉽게 편곡해서 악보와 CD로 만들어 책으로 만들고 싶으며, 세 번째는 틈틈이 또 다른 꿈에 도전중이라며 수수한 장밋빛 소망과 비밀한 미래를 밝혔다.

부여군 홍보대사 위촉에 대해 박은주는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백제의 왕도 부여를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에 스며들게 해 가는 곳곳마다 울려 퍼지게 할게요. 또한 부여군 홍보대사 1호로 위촉돼 영광스럽고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하며 미소 졌다.

연예인보다 뮤지션을 하고 싶어 하는 그녀, 많이 연구해서 좋은 음악 들려주고 싶은 그녀, 대중과 국민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은 그녀, 가슴으로 연주하는 자신의 곡을 듣고 힐링했으면 하는 그녀, 사람들의 가슴 가슴에 기억으로 남고 싶은 그녀는 ‘자랑스러운 한류바이올리니스트 ’, ‘가슴에 남는 국민바이올리니스트’로 마닐라의 딸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딸’이다.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깨끗한 애지실천(愛之實踐) 마음을 타고 손끝에 닿아 움직이는 바이올린 소리는 듣는 이 모두에게 그윽한 향기를 감돌게 하고 그 향기는 멀리 갈수록 하늘과 땅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무변의 맑음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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